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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로 3부작 총정리 –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죄의 어머니

by hoho1010 2025. 6. 5.

18세기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오귀스탱 카롱 드 보마르셰(Pierre Beaumarchais)의 희곡 3부작은 단순한 오락극이 아닙니다.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죄의 어머니(또는 길르메의 범죄)'로 이어지는 이 시리즈는 하나의 인물을 중심으로 계급, 자유, 정의라는 테마를 품고 있으며, 이를 오페라라는 장르로 옮긴 작곡가들은 저마다의 해석으로 세 작품을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각 작품은 피가로와 로지나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처음에는 재치와 연애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점점 더 사회적 풍자와 인간 내면의 갈등을 중심으로 깊이를 더해갑니다. 오페라 애호가뿐 아니라 클래식 입문자에게도 피가로 3부작은 스토리와 음악의 조화를 체험하기에 가장 좋은 여정이 될 수 있습니다.

피에르 보마르셰 초상화

세비야의 이발사 – 유쾌한 지략, 사랑의 첫걸음

로시니가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 1816)》는 피가로 시리즈의 서막으로, 빠른 템포와 유머가 가득한 오페라 부파의 대표작입니다. 줄거리는 백작 알마비바가 신분을 숨기고 아름다운 로지나에게 진정한 사랑을 얻으려는 이야기로, 이발사 피가로의 재치가 모든 사건을 주도합니다. 피가로는 알마비바를 도와 로지나의 보호자 바르톨로를 속이고,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을 성사시킵니다. 이 작품의 중심은 '기지'입니다. 피가로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사회적 질서를 흔드는 힘을 가진 인물로 등장합니다. 아리아 ‘Largo al factotum(나는 이 도시의 해결사)’는 피가로의 활력과 유쾌한 성격을 대표하며, ‘Una voce poco fa’에서는 로지나의 적극적인 성격이 드러납니다. 로시니는 경쾌한 선율과 빠른 앙상블로 인물 간의 긴장을 재미있게 풀어내며, 이 첫 작품에서 피가로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킵니다.

피가로의 결혼 – 사랑의 반란, 계급 풍자의 정점

모차르트가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1786)》은 보마르셰 희곡의 두 번째 작품을 원작으로 하며, 로시니의 이발사보다 약 30년 먼저 탄생했습니다. 이 오페라는 음악적 깊이와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고전주의 오페라 부파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세비야에서 몇 년 후,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가 결혼한 후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하인이 된 피가로가 자신의 약혼녀 수잔나를 노리는 백작의 계략을 막으려 하고, 궁중 안팎의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한바탕 계급적 소동이 벌어집니다.

여기서 피가로는 단순히 재치 넘치는 하인이 아니라, 귀족에 맞서 싸우는 의식 있는 개인으로 묘사됩니다. “Se vuol ballare”에서 그는 권력자에게 대적할 준비가 되어 있고, “Non più andrai”에서는 익살스럽게 군인 체르비노를 놀리며 이야기의 분위기를 환기합니다. 이 작품은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을 예고하듯, 하층민이 권력층의 위선을 폭로하고, 진정한 사랑과 평등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음악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

수잔나와 백작부인의 아리아들은 여성의 자율성과 감정을 매우 섬세하게 다루며, 각 인물의 감정 변화가 복잡한 앙상블을 통해 밀도 있게 전개됩니다. 모차르트는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내면을 음악으로 묘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죄의 어머니 – 잊혀진 마지막 이야기, 인간의 어두운 내면

보마르셰의 마지막 희곡 『죄의 어머니(La Mère coupable)』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무거운 분위기와 인간 내면의 도덕적 갈등을 다룹니다. 오페라화된 대표 작품으로는 다니엘 프랑소와 에스프리 오베르의 동명 오페라(1966)와, 현대작곡가 티에리 페쿠의 버전이 있습니다. 비록 공연 빈도는 낮지만, 문학적 가치와 시리즈의 완결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 작품은 백작 부인과 다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존재, 피가로와 수잔나의 갈등, 알마비바 백작의 쇠퇴 등을 통해 인간의 도덕적 선택과 후회, 속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피가로는 여기서도 조력자이지만 이전보다 훨씬 냉철하고 현실적인 인물로 묘사되며, 로지나는 더 이상 밝고 당찬 여성이 아니라 과거의 선택으로 고뇌하는 복잡한 인물로 나타납니다.

음악적으로 이 작품들은 자주 공연되지 않지만, 보마르셰의 서사 구조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며, 고전 희극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떻게 현대적 심리극으로 진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 우리는 ‘피가로의 삶’이 단지 웃음으로 끝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피가로를 통해 본 계몽의 여정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시작된 피가로의 여정은 단지 한 인물의 성장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곧 18세기 말 유럽의 사회 변화와 개인 의식의 진화를 반영하는 서사입니다. 로시니는 그 출발을 경쾌한 리듬과 기지로 열었고, 모차르트는 이를 계급과 성 역할에 대한 진지한 탐구로 확장했으며, 보마르셰 자신은 마지막에 이르러 인간 본성의 어두운 내면까지 그려냈습니다. 이 세 작품은 각각 다른 작곡가, 다른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피가로’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유쾌하고도 날카롭게 묻고 있습니다. 오페라로 즐기든, 문학으로 접근하든, 피가로 3부작은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으로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