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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텔로 – 셰익스피어의 질투, 베르디의 절정

by hoho1010 2025. 6. 1.

베르디의 후기 걸작 《오텔로》는 셰익스피어의 동명 비극을 원작으로 하여, 오페라가 문학을 어떻게 음악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단순히 ‘질투에 눈이 먼 장군’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인간의 감정이 파괴되는 과정을 음악으로 구현한 이 오페라는 베르디가 이룬 극적 구성과 오케스트레이션의 정점이라 평가받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오텔로》의 창작 배경, 인물 간의 감정선, 대표 아리아를 중심으로, 작품이 지닌 내면적 깊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오텔로 공연 스틸

베르디의 침묵을 깨운 셰익스피어

《오텔로》는 베르디가 70세가 넘은 나이에 작곡한 작품입니다. 사실 그는 《아이다》 이후 오페라 작곡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였습니다. 그를 다시 작곡으로 이끈 것은, 바로 셰익스피어라는 문학적 거장이었습니다. 베르디는 생전에 셰익스피어의 극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후기 대표작인 《오텔로》와 《팔스타프》는 모두 셰익스피어 희곡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곡가 보이토(Arrigo Boito)가 대본을 맡아 원작의 구조를 압축하면서도, 음악적으로 폭발할 수 있는 극적 상황을 효과적으로 남긴 덕분에 《오텔로》는 원작에 뒤지지 않는 서사적 강렬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작품의 첫 장면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항구에 오텔로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관객은 이미 한 편의 음악극이 아니라, 심리적 비극의 소용돌이로 끌려들게 됩니다.

질투와 파괴, 그리고 사랑 – 인물 간의 구조

《오텔로》의 주된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정복자이자 장군인 오텔로가 부하 이아고의 조작에 속아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고,

결국 그녀를 죽인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구조 속에는 심리, 계급, 인종, 감정 조작이라는 복합적인 요소가 얽혀 있습니다. 

  • 오텔로: 무어인 출신의 외국인 장군. 전쟁에서는 누구보다도 강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인물입니다. 그는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고, 사랑에 대한 확신이 무너졌을 때 무너지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 데스데모나: 오텔로의 아내로, 순결하고 충직한 여인입니다. 그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남편에게 의심받고,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만 비극을 피하지 못합니다.
  • 이아고: 작품의 핵심 악역으로, 오텔로의 파멸을 계획합니다. 그는 단순한 질투가 아닌, 인간 감정 자체를 조종하고 실험하는 존재로서, 베르디가 표현한 가장 악마적인 캐릭터입니다.

이 세 인물의 감정선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오텔로》는 그 어떤 외부 전쟁보다도 더 치열한 심리 전쟁의 무대로 변하게 됩니다.

 

음악으로 그려낸 질투의 나선

베르디는 《오텔로》에서 전통적인 아리아 구조를 무너뜨리고, 음악을 통해 인물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설계하였습니다.

그래서 《오텔로》는 일반적인 아리아·레치타티보 구분이 느슨하며, 그만큼 감정의 흐름이 더 생생하고 실감 나게 다가옵니다.

1막 마지막에 데스데모나와 오텔로가 함께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은, 비극이 시작되기 전 단 한 번 주어지는 평온의 순간입니다.

 

“Già nella notte densa, s’estingue ogni clamor…” 
(짙어진 밤 속에서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이 장면은 고요함 그 자체이지만, 곧 다가올 질투와 파국을 대비하는 서정적 클라이맥스로 작용합니다.

 

반면 2막과 3막에서는 이아고가 질투를 조장하는 장면들이 이어지며, 오텔로의 심리는 점차 무너집니다. 특히 2막에서 이아고가 부르는 아리아 〈Credo in un Dio crudel〉(나는 잔혹한 신을 믿네)는 그의 악의가 단순한 사사로운 복수를 넘어서, 세계관 그 자체가 파괴적임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Credo in un Dio crudel che m’ha creato simile a sè…” 
(나는 나를 자신처럼 잔혹하게 창조한 잔인한 신을 믿는다…)

 

이 아리아는 서정성 없이 차갑고 무겁게 구성되어 있으며, 작품 전체의 공기를 바꾸는 전환점이 됩니다. 4막에서 데스데모나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듯 부르는 〈Ave Maria〉는 오페라 사상 가장 슬픈 기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Ave Maria, piena di grazia…” 
(성모 마리아여,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시여…)

 

그녀는 끝까지 오텔로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죄 없는 죽음을 순결하게 받아들이며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파멸의 순간 – 죽음으로 도달하는 진실

《오텔로》의 마지막 장면은 극적인 폭발과 동시에 깊은 침묵을 동반한 비극의 마무리입니다. 오텔로는 데스데모나를 질투심에 죽이고 나서야 진실을 깨닫고, 그녀의 시신 앞에서 후회의 절규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Niun mi tema…”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라…)

 

그의 마지막 대사는 승리의 상징이었던 장군 오텔로가 인간 오텔로로 추락하며, 스스로를 역사 속에서 지우는 의식처럼 들립니다. 

이 장면은 음악적으로도 감정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다가, 최종적으로 극도의 침묵과 단절로 끝을 맺습니다. 관객은 단지 한 남자의 질투를 넘어서, 감정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전율 속에서 체감하게 됩니다.

문학과 음악, 감정의 정점에서 만나다

베르디의 《오텔로》는 단순한 셰익스피어 각색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문학적 비극의 힘을 음악적 비극으로 변환한

완성도 높은 음악 심리극입니다.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구분이 사라지고, 오케스트라가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며, 음악은 말보다 앞서 감정을 말해줍니다.《오텔로》를 감상하신다면, 화려한 무대 연출도 좋지만 음악 속에서 질투가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며, 파멸로 이어지는지 그 감정의 곡선을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그 안에 베르디가 말하고 싶었던 인간의 본성과 고독, 그리고 용서받지 못한 감정의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