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는 단순한 SF 호러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여성의 몸’과 ‘욕망의 시스템’, 그리고 자아 정체성의 붕괴라는 철학적 주제를 파격적인 영상 언어로 풀어낸 실험적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영화 <서브스턴스>의 핵심 요소인 육체의 이중성, 욕망의 폭력성, 파괴적 결말을 중심으로 상징 해석과 의미 분석을 진행한다.
영화 정보
- 제목: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 감독: 코랄리 파르자 (Coralie Fargeat)
- 주연: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 장르: 호러, 스릴러, SF
- 줄거리 : 한때 인기를 누리던 중년 여성 스타는 ‘서브스턴스’라는 신비한 물질을 통해 젊고 아름다운 새로운 자아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자아는 점점 통제 불능의 존재로 변해가며, 본래의 자신과 충돌하게 된다. 외적인 아름다움, 사회의 기대, 여성의 육체적 존재를 둘러싼 욕망과 파괴가 공존하는 이야기다.
육체: 자아와 욕망의 실험 대상
<서브스턴스>는 여성의 육체를 단순한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육체를 끊임없이 분리하고 재구성하며, 자아와 사회가 그 몸에 투영하는 욕망의 역사를 해부한다. 주인공은 중년의 육체를 부정하고, '서브스턴스'라는 실험적 물질을 통해 새로운 육체를 만든다.
이 ‘새로운 나’는 매혹적이고 젊은 육체를 지녔지만, 그 존재는 곧 “내가 아니면서도 나”인 불안한 타자로 다가온다. 신체를 분리하는 설정은 단순한 환상 실현이 아닌, 현대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외모 기준과 나이듦에 대한 공포를 시각화한 장치다.
감독 코랄리 파르자는 “이 영화는 여성의 몸이 어떻게 자본과 미디어에 의해 찢기고 재조합되는지를 시각적으로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관객에게 육체가 자아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육체는 나인가, 아니면 내가 조종해야 할 껍데기인가?
욕망: 시스템이 만든 폭력
영화에서 ‘서브스턴스’는 단순한 실험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의 결정체이자, 사회가 만들어낸 “이상적 여성”에 대한 무형의 강박을 구체화한 존재다. 이 물질은 사용자의 꿈을 실현시켜주지만, 동시에 그 사람의 진짜 자아를 침식하고, 파괴한다.
젊고 아름다운 새 자아는 주인공의 억눌렸던 욕망을 해방시켜주는 동시에,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의 극단을 수행한다. 날씬하고 섹시하며 감정을 억제하고 남성의 시선을 만족시키는 존재. 그러나 그 ‘완벽한 여성’은 결국 현실을 지배하려 들며, 기존의 자아를 없애려는 폭력으로 변질된다.
이 과정은 마치 욕망이라는 시스템이 개인을 집어삼키는 구조를 은유한다. 특히 후반부의 끔찍한 신체 분해 장면들은 단순한 고어적 자극이 아니라, 욕망의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이 영화는 “무엇을 원하느냐”가 아닌, “그 욕망이 어디서 왔고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파괴: 자아 붕괴와 사회 비판
<서브스턴스>의 결말은 명확한 해피엔딩도, 단순한 비극도 아니다. 두 자아는 서로를 파괴하려 들고, 결국 육체와 정신은 모두 붕괴된다. 이 파괴는 단순히 캐릭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의 총합으로 볼 수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자신의 존재를 통제하려는 욕망이 결국 스스로를 해친다는 구조를 반복한다. 젊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 사회적 주목을 받고 싶은 욕망, 존재를 새로 쓰고 싶은 욕망. 이 모든 욕망은 결국 ‘나’를 해체하는 기제로 기능한다.
결말에서 남는 것은 조각난 육체와 공허한 정체성, 그리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원래의 자아다. 감독은 이러한 종말적 이미지를 통해 현대 여성이 겪는 정체성 분열과 사회적 해체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단지 여성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 사회 전반이 인간을 욕망의 기계로 만든 결과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기도 하다. <서브스턴스>는 보기 불편한 영화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우리 사회의 거울이 된다.
<서브스턴스>는 육체, 욕망, 파괴라는 3개의 코드로 현대 여성의 정체성을 해부하는 강렬한 시각 실험이다. 단순히 충격적이거나 기괴한 영화가 아니라, 욕망이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인간을 해체하고 소비하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본다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내 몸은 나의 것인지에 대해 묻게 될 것이다. 사회적 시선에 휘둘리는 모든 이들에게 이 작품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