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는 욕망, 권력, 성, 죽음이 얽혀 있는 충격적인 오페라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여,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이 집착과 파괴로 변모하는 과정을 심리적으로 극대화한 이 작품은, 현대 오페라 연출과 음악 미학 모두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살로메의 ‘일곱 베일의 춤’과 마지막 장면은 오늘날까지도 오페라 무대에서 가장 강렬한 연출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배경과 창작 의도 – 금기의 파괴, 감정의 극단
《살로메(Salome)》는 1905년 드레스덴에서 초연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대표작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명 희곡(1891년)을 독일어로 번안한 이 대본은, 구약 성경 속 인물들을 배경으로 하되, 전통적인 도덕 윤리를 전복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에서 클래식 음악의 언어를 이용해 현대적 충격을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성적 욕망이나 피의 묘사는 오페라에서 금기시되던 소재였지만, 《살로메》는 이를 전면에 내세우며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음악으로 형상화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1시간 40분가량의 단막극이며, 음악과 서사가 끊김 없이 이어지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관객은 심리적 밀실 속에 갇힌 듯한 집중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물의 충돌 – 사랑인가, 집착인가?
《살로메》는 겉으로는 단순한 권력극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욕망과 억압, 거절과 파괴가 감정의 층위에서 정교하게 쌓여가는 구조입니다.
- 살로메: 헤로데의 의붓딸로, 유대 예언자 요하난(성 요한)에게 강한 매혹을 느낍니다.
그녀는 단순한 ‘유혹자’가 아닌, 사랑과 집착의 경계에서 파괴로 향하는 인물입니다. - 요하난(요한): 도덕과 신앙의 상징으로, 살로메의 욕망을 완강히 거부합니다.
- 헤로데: 살로메를 욕망하며, 자신의 왕권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 헤로디아: 살로메의 어머니로, 요하난을 증오합니다.
살로메가 요하난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그녀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녀의 사랑은 응답받지 못할수록 더 타오르고,
결국 그의 머리를 원하게 되는 파괴적 감정으로 전환됩니다.
음악의 언어 – 불협화와 아름다움의 공존
《살로메》는 슈트라우스 특유의 관현악법이 극대화된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매우 현대적인 음악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입부부터 불협화음과 전조의 빈번한 사용은 감정이 안정되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살로메의 감정은 일정한 선율로 정리되지 않으며, 오히려 끊어지고 불안정한 선율, 급작스러운 다이내믹 변화로 그려집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은 바로 ‘일곱 베일의 춤’(Tanz der sieben Schleier)입니다. 이 장면은 살로메가 요하난의 머리를 요구하기 전, 헤로데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으로 단순한 유혹의 춤이 아닌, 감정의 해체와 육체의 전시가 결합된 상징적 장면입니다. 음악은 우아함과 섬뜩함을 오가며 관객으로 하여금 ‘쾌락의 불편함’을 체험하게 합니다.
초연 당시 반응과 사회적 금기의 충돌
《살로메》는 초연 직후부터 음악계와 사회 전반에 걸쳐 강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독일 드레스덴에서의 초연은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당시의 보수적인 기독교 사회에서는 이 작품이 “신성모독적이며 음란하다”는 이유로 여러 지역에서 공연 금지 또는 검열 조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는 초연이 계획되었지만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반대로 공연이 무산되었습니다.
- 영국에서는 1907년까지 공연이 금지되었으며, 초연은 콘서트 버전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첫 공연 이후 즉각 공연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살로메》는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20세기 초 유럽 사회의 도덕성과 예술 자유 간의 충돌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논란 덕분에 《살로메》는 더욱 유명해졌고, 오늘날에는 오페라의 표현 한계를 넓힌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클라이맥스 – 죽음과 키스, 금기를 넘은 사랑
오페라의 마지막은, 음악적으로도 연출적으로도 가장 강렬한 충격을 선사합니다. 살로메는 요하난의 머리를 접시에 담아 받게 되고,
그 시신에 입을 맞추며 다음과 같은 독백을 읊습니다.
“Ah! Ich habe deinen Mund geküsst, Jokanaan.
Ah! Ich habe ihn geküsst, deinen Mund…”
(아, 나는 당신의 입술에 입 맞췄어요, 요하난. 아, 당신의 입술에 입 맞췄어요…)
이 대사는 《살로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장면이자, 금기를 깨는 순간, 인간 감정의 파국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이 순간 음악은 극도로 팽창한 후 급격하게 침묵하고, 곧이어 병사들이 살로메를 처형하며 작품은 끝납니다. 살로메의 사랑은 ‘응답 없는 사랑’이었고, 그 응답을 죽음을 통해 쟁취하는 순간, 그녀 역시 파괴되어야만 했습니다.
욕망, 종교, 죽음이 교차하는 심리 오페라
《살로메》는 단순한 오페라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감정이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인간이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지를, 그리고 음악이 그것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심리극의 정점입니다. 특히 관람하실 때에는 살로메의 감정선이 어떻게 점층적으로 고조되는지, 음악이 불협과 전조를 통해 그녀의 내면을 어떻게 묘사하는지에 주목하신다면 이 작품의 진가를 더 깊게 체감하실 수 있습니다. 《살로메》는 ‘금지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어디까지 가능하며, 그것이 어떻게 파괴로 이어지는가’를 음악과 무대가 증언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