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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터널' (하정우, 생존영화, 현실감)

by hoho1010 2025. 4. 4.

영화 ‘터널’(2016)은 하정우 주연의 재난 생존 영화로, 터널 붕괴 사고에 갇힌 한 남자의 고립된 시간을 그린 작품이다. 단순한 긴장감이나 스펙터클에 의존하지 않고,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성, 시스템의 무능, 생존에 대한 본능적 메시지를 현실감 있게 담아낸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2024년 현재, 이 영화는 각종 사회적 참사와 느린 대응 체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으로 다시 회자되고 있다. 특히 하정우의 몰입감 있는 연기, 사실적인 연출, 그리고 현실을 그대로 옮긴 듯한 감정선은 터널이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닌 사회적 고발 성격의 드라마로도 받아들여지게 한다.

 

터널 포스터
터널 포스터

하정우의 몰입감 있는 연기

하정우는 영화 ‘터널’에서 자동차 딜러 '이정수' 역할을 맡아, 무너진 터널에 갇힌 한 남자의 생존기를 압도적인 몰입감으로 그려냈다. 이 영화에서 하정우는 대형 세트장이 아닌 좁은 공간, 정적인 환경 안에서 90% 이상의 장면을 혼자 이끌어나가는 1인극에 가까운 연기를 펼쳤다. 그의 연기는 과장된 감정 없이도 극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킨다. 특히 생수 한 병과 케이크 두 개로 생존을 이어가며 점점 피폐해지는 과정,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체념 사이에서 흔들리는 감정선은 관객에게 실시간 고립 상황을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이 영화에서 하정우는 극한 상황에서도 평범한 인간으로 남아 있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화려한 대사나 위인적인 행동보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 처했을 때 보일 법한 두려움, 분노, 체념이 더욱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의 담백하면서도 절실한 연기는 이정수라는 인물을 단순한 생존자가 아닌 ‘우리 모두일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생존 영화의 현실감, 그리고 답답한 시스템

‘터널’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생존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둘러싼 국가 시스템, 언론, 구조 체계의 비현실성까지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속 구조대는 초기에 적극적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산, 정치, 여론의 눈치를 보며 우선순위에서 이정수의 생존을 밀어낸다. 이 과정은 실제 재난에서 보이는 ‘보여주기식 대응’과 ‘책임 회피’, 그리고 진심으로 생명을 대하는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구조본부장(오달수)과 장비 담당자, 정치인의 대화는 씁쓸하면서도 현실을 너무나 잘 반영한다. 이정수의 아내(배두나)의 감정은 사건이 길어질수록 무뎌지는 사람들과 대조되며, 실제 피해자의 입장에서 느껴질 법한 외로움과 분노를 대변한다. 영화는 누구 하나를 명확한 악인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만,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생존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이 점이야말로 영화 ‘터널’이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무서운 지점이다.

터널이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것

이 영화에서 터널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와 개인의 심리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깜깜하고 답답한 공간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남는 이정수의 모습은, 현대인이 겪는 고립과 생존의 은유로도 읽힌다. 모바일 배터리가 다 닳고, 바깥과의 연락이 끊기는 순간, 그는 완전히 단절된 존재가 된다. 이 때 영화는 인간이 어떤 조건에서 생존 본능을 유지하고, 어떻게 희망을 붙잡으려 하는지를 아주 섬세하게 보여준다. 영화 중반 이후, 이정수가 자신의 이름이 뉴스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은 강렬한 상징성을 담고 있다. ‘기억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공포, 그리고 무력감은 극한 상황이 아닌 지금 이 사회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영화의 마지막, 작은 돌파구를 발견하고 결국 구조되는 장면은 감동적이지만, 동시에 이정수를 구조한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몇 명의 사람이라는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터널’은 결국 물리적 재난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무감각과 비효율이라는 터널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터널’은 재난 상황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인간의 감정, 사회 시스템의 민낯, 그리고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하정우의 연기와 김성훈 감독의 연출은 극적이기보다는 사실적이며, 그래서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2024년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본다는 건 단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더 똑바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